[기획연재] 호미농부의 도시농업 대백과 04

제3부: 세계의 도시농부들을 만나다

4회. 미국편: ‘식량 사막’을 없애는 공동체 히어로들

안녕하세요, 호미농부입니다.

지난 여정들을 통해 도시농업의 역사적 뿌리와 다양한 유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 각국의 특색있는 도시농업 현장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각 도시의 환경과 문화,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과제에 따라 얼마나 다채롭고 창의적인 해법들이 피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비춰주는 등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첫 번째 목적지, 개척과 혁신의 나라 미국으로 다시 떠나, 그들의 텃밭이 어떻게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되었는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식량 사막’을 없애는 공동체 히어로들 (심화편)

미국은 세계 최대의 농업 수출국이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짙은 그늘이 존재합니다. 바로 ‘식량 사막(Food Desert)’ 문제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집을 나서면 반경 1~2km 안에 패스트푸드점과 주류 판매점, 가공식품만 파는 편의점은 즐비하지만, 신선한 사과 한 알, 상추 한 포기를 사려면 버스를 타고 40분을 가야 하는 곳. 이것이 수백만 미국 도시민들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저소득층, 특히 아프리카계나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집중된 이 문제는 비만, 당뇨, 심장병 등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됩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일부 주민들은 더 이상 정부나 대기업이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낡은 작업복을 입고, 삽과 호미를 들고, 버려진 땅으로 향했습니다. 미국의 도시농업은 단순한 취미나 친환경 운동을 넘어, 나와 내 이웃의 건강, 그리고 공동체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강력한 ‘사회 정의 운동’입니다.

자동차 도시의 폐허 위, 희망을 재건하는 디트로이트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심장이었던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처참했습니다. ‘빅3’ 자동차 회사가 무너지자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도시를 떠났고, 2013년에는 시가 파산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시의 3분의 1에 달하는 땅이 주인을 잃고 잡초만 무성한 공터와 폐허로 변했습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은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모두 철수해버렸고, 디트로이트는 거대한 식량 사막이 되었습니다.

Keep Growing Detroit Farm
폐허가 된 공장 건물을 배경으로 초록의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Keep Growing Detroit Farm image (출처. detroitagriculture.net)

바로 이 폐허 속에서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이주 시대에 남부 농업 지역에서 디트로이트로 이주해왔던 아프리카계 노인들은, 그들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농업 지식과 손맛을 기억해냈습니다. 이들은 이웃들을 모아 버려진 공터를 갈아엎고 밭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킵 그로잉 디트로이트(Keep Growing Detroit)’와 같은 비영리 단체는 현재 2,000개가 넘는 도시 텃밭과 농장을 지원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씨앗과 모종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농업 기술을 교육하며, 도시 농부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직거래 장터를 엽니다.

이곳의 텃밭은 더 이상 침묵의 공간이 아닙니다. 산업의 소음이 멎은 자리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이웃 간의 정겨운 대화 소리가 채워집니다. 청소년들은 갱단의 유혹 대신 흙을 만지며 노동의 신성함과 수확의 기쁨을 배우고, 노인들은 평생 쌓아온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며 존엄을 되찾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도시농업은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상처 입은 도시의 영혼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 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혁신과 저항을 외치는 농부들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과 엔터테인먼트의 중심 로스앤젤레스. 이 거대한 두 도시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녹색 혁명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gotham greens
(image. gotham greens)

뉴욕에서는 ‘브루클린 그레인지(Brooklyn Grange)’ 같은 흙 기반 옥상 농장과 더불어, 수경재배(Hydroponics) 기술을 활용하는 ‘고담 그린스(Gotham Greens)’가 도시농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이들은 최첨단 온실을 옥상에 설치해 1년 내내 샐러드 채소를 생산하여 뉴욕 전역의 레스토랑과 식료품점에 공급합니다. 옥상에 흙과 자재를 올리는 엄청난 물류 비용, 허리케인급 강풍과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은 도시농업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지속가능한 산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센트럴의 식량 사막에서는 론 핀리(Ron Finley)라는 한 남자가 나타나 세상을 바꿨습니다. 그는 “텃밭을 가꾸는 것은 돈을 찍어내는 것과 같다”고 외치며, 자기 집 앞 도로와 인도 사이의 버려진 땅(curbside)에 채소와 과일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시 당국이 불법이라며 벌금 딱지를 붙이자, 그는 오히려 더 많은 이웃을 모아 동네 전체를 거대한 식용 정원으로 바꾸는 ‘게릴라 가드닝’ 운동을 펼쳤습니다. 스스로를 ‘갱스터 가드너(Gangsta Gardener)’라 칭하는 그의 저항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LA 시의 조례를 바꾸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Ron Finley's Gangster Gardener Project
Ron Finley’s Gangster Gardener Project (image. Google Jemini)

디트로이트의 재건, 뉴욕의 비즈니스 혁신, LA의 저항 운동. 이 모든 이야기는 미국의 도시농업이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 즉 우리 동네의 먹거리는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한다는, 가장 미국적인 방식의 자유와 자치를 향한 위대한 투쟁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