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운 파종이 가능할까요

무경운 파종 농사법: 국내외 현황과 확산 방안

안녕하세요, 호미농부입니다. 오늘은 인류의 오랜 농업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 출발한 무경운 파종(No-till farming)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흙이나 땅을 괭이나 쟁기, 트렉터로 갈지 않는 농업 방식인 무경운 농법은 토양 보전, 탄소 저감, 노동력 및 생산비 절감 등 다양한 이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은 SNS 글이나, 블로그, 유튜브 영상을 통해 무경운으로 농사를 짓고 계신 많은 농부님들을 만나보셨을 테지요.

오늘은 인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무경운의 흔적부터, 현대 농업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 현재의 성장세와 미래 전망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확산 방안도 알아 볼게요.


1. 서론: 왜 다시 ‘갈지 않는 농사’인가?

경운(耕耘), 즉 밭을 가는 행위는 수천 년간 농업의 당연한 첫 단계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기계화된 현대 농업에서 경운은 토양의 구조를 파괴하고, 유기물을 분해시켜 토양의 비옥도를 떨어뜨리며, 수분 손실과 침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농기계 사용으로 인한 화석 연료 소비와 토양 속 탄소의 대기 배출은 기후 변화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무경운 파종 농사법은 이러한 관행적 경운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작물 수확 후 남은 잔여물을 그대로 두고, 경운 없이 특수 파종기를 이용해 씨앗을 심는 이 방식은 토양을 살아있는 생태계로 보고 그 건강성을 회복·유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곧 지속가능한 농업의 실현과 직결되며, 전 세계 농업계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2. 역사 속 무경운의 흔적

무경운이 현대에 와서 갑자기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고대 원시 농업에서 인류는 막대기나 뾰족한 도구로 땅에 구멍을 내고 씨앗을 심는 최소한의 경작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토양 교란을 최소화하는 원시적 형태의 무경운 농법으로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같은 고대 문명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경운으로 인한 토양 황폐화와 사막화가 거론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경운에 의존하는 농업의 한계를 보여준다.

한국의 전통 농업에서도 완전한 무경운은 아니지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자연농법(自然農法) 철학 속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땅의 힘을 최대한 존중하고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무경운이 추구하는 가치와 맥을 같이 한다.

3. 현대 무경운 농법의 본격적인 시작과 발전

현대적 의미의 무경운 농법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계기는 1930년대 미국을 덮친 ‘더스트 볼(Dust Bowl)’ 사건이다. 대규모 기계 경운으로 인해 미세하게 부서진 표토가 극심한 가뭄과 바람에 날려 사라지면서, 미국 대평원은 거대한 먼지 폭풍 지대로 변했다. 이 재앙은 토양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에드워드 포크너(Edward H. Faulkner)가 1943년 저서 『쟁기꾼의 어리석음(Plowman’s Folly)』을 통해 경운의 해악을 경고하고,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가 『짚 한 오라기의 혁명(The One-Straw Revolution)』을 통해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의 자연농법을 제시하며 철학적 기반을 다졌다.

북 커버
The One-Straw Revolution 책 표지 이미지

4. 현재의 성장세와 현황

가. 세계적 현황 및 성장세

전 세계적으로 무경운 농법의 채택 면적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999년 약 4,500만 헥타르(ha)에 불과했던 무경운 재배 면적은 2009년 1억 1,100만 ha를 넘어섰고, 2018/2019년에는 약 1억 8,000만 ha에 달하며 20년 만에 4배 가까이 성장했다.

특히 호주를 비롯해 북미와 남미 대륙에서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호주에서는 한반도 면적보다 큰 2300만 ha에 달하는 농경지중 67%가 무경운 농법을 적용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남미 국가들은 전체 경작지 중 60~70% 이상에서 무경운 농법을 채택하며 세계적인 무경운 농업 선도국으로 부상했다. 미국과 캐나다 역시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과 농가 인식 개선에 힘입어 채택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는 관련 농기계 시장의 확대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 기관인 Stratistics MRC에 따르면, 전 세계 무경운 및 최소경운 장비 시장은 2025년 약 77억 5,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8.15%로 성장을 거듭해 2032년에는 약 134억 1,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된다.

나. 국내 현황 및 성장세

한국의 무경운 농법은 아직 도입 초기 단계에 있지만, 농촌 고령화와 일손 부족, 기후 위기 대응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정확한 전국 단위의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한 연구 개발과 정책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특히 전남 순천의 유기농 명인 김태현 농군이 1.5 ha의 면적에서 무경운농법을 실천하며, 몇몇 농가에서 무경운 농법을 시도하면서 점차 면적이 늘어갈 전망이다. 또한 전남 농업기술원에서도 무경운농법을 통해 벼농사에 이어 밭농사에서도 탄소농업 보급에 나서고 있다.

자연농업을 중시하면서, 유기농과 무경운을 결합하는 농법도 많은 이들이 채택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무경운(토양갈지 않기), 무농약(화학농약 안주기), 무멀칭(비닐멀칭 안하기), 무화학비료(화학비료 안주기) 등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땅을 유지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은 특히 대규모 무경운 농사를 위해 파종기와 같은 대규모 농기계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무거운 농기계가 밭으로 진입하는 것을 거부하며 농사짓는 자연농법 방식을 채택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2011년에는 ‘한국무경운농업연구회’가 창립되어 농가 단위의 연구와 기술 보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전남 곡성, 충남 홍성 등지의 선도 농가들을 중심으로 벼, 콩,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에 무경운 농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생산비 절감과 토양 환경 개선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논농사는 밭농사에 비해 무경운 도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향후 쌀농사를 중심으로 한 확산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무경운 농법 이점
무경운 농법의 이점 (출처. EESI)

5. 향후 전망

무경운 농법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농업(Carbon Farming)’의 핵심 기술로서, 토양에 탄소를 격리하는 능력은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향후 탄소배출권과 연계된 농업 보조금 정책으로 이어져 무경운 농법의 확산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GPS, 드론, 인공지능(AI) 등 정밀 농업 기술과의 융합은 무경운 농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다. 토양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필요한 곳에만 최소한의 양분과 씨앗을 투입하고, 로봇이 잡초를 제거하는 등의 기술 발전은 무경운 농법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초기 잡초 관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다.

국내에서도 농촌진흥청이 무경운을 주요 정책 과제로 채택하고 관련 연구를 확대하고 있어, 한국형 무경운 농법 모델이 정립되고 보급 체계가 갖춰진다면 향후 10년 안에 농업 현장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6. 국내 무경운 농법 확산 방안

국내에 무경운 농법을 성공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각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가. 정책적 지원 강화

  • 직불금 연계 및 인센티브 제공: 무경운 농법을 실천하는 농가에 ‘탄소 저감 직불금’ 또는 ‘환경 보전 직불금’과 같은 직접적인 재정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초기 도입의 장벽을 낮춘다.
  • 농기계 보급 지원: 무경운 전용 파종기, 제초기 등 고가의 초기 장비 구매 비용에 대한 보조금 또는 저리 융자 지원을 확대한다.
  • 공공기관의 선도적 역할: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센터 등 공공기관이 지역별 실증 시험포를 운영하여 성공 모델을 제시하고, 공공 비축미 수매 시 무경운 재배 쌀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나. 한국형 연구개발(R&D) 및 교육 확대

  • 지역 맞춤형 기술 개발: 각 지역의 토양, 기후, 주요 작물에 최적화된 ‘한국형 무경운 농법 매뉴얼’을 개발하고 보급한다. 피복작물 선정, 파종 시기 및 방법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 농가 교육 및 현장 컨설팅: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론 교육과 함께, 선도 농가 현장 견학, 전문가 컨설팅 등 실질적인 기술 습득 기회를 확대한다. ‘찾아가는 무경운 농업 교실’ 등을 운영하여 접근성을 높인다.
  • 청년농 및 귀농인 대상 특화 교육: 새로운 기술 수용에 개방적인 청년농과 귀농인을 대상으로 무경운 농법을 집중적으로 교육하여 미래 농업의 핵심 인력으로 양성한다.

다. 사회적 인식 개선 및 네트워크 구축

  • 성공 사례 홍보 및 가치 확산: 언론 매체,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무경운 농법의 성공 사례와 그 환경적·경제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소비자와 농업인의 인식을 개선한다.
  • 농업인 네트워크 활성화: ‘한국무경운농업연구회’와 같은 농가 중심의 자발적 네트워크 활동을 지원하여, 농업인 간의 기술 교류와 정보 공유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 산·학·연·관 협력 체계 구축: 농기계 업체, 종자 회사, 대학, 연구기관, 정부가 협력하여 무경운 농법에 필요한 기술과 자재를 개발하고, 현장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

7. 결론

무경운 파종 농사법은 단순히 밭을 갈지 않는 기술을 넘어, 토양을 살리고 환경을 보전하며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철학이자 실천이다. 전 세계적인 확산 추세는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임을 증명한다. 한국 농업 역시 고령화와 기후 위기라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지금, 무경운 농법의 적극적인 도입과 확산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체계적인 정책 지원, 현장 중심의 연구개발, 그리고 농업인과 국민의 인식 전환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