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도시를 치유하는 농사: 농업의 교육적, 심리적 가치
안녕하세요, 흙을 만지는 기쁨을 전하는 호미농부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협동조합과 CSA를 통해 도시농업이 어떻게 ‘경제적 공동체’를 꾸려나가는지 이야기 나눴습니다. 함께 생산하고 나누는 과정 자체가 도시의 경제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었죠.
오늘은 시선을 조금 돌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빽빽한 빌딩 숲, 숨 가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많은 분이 주말농장에서 땀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묘한 상쾌함과 평온함을 느낀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몸을 움직였기 때문일까요? 아닐 겁니다. 흙과 식물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강력한 치유의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13회에서는 삭막한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처방전, ‘도시농업의 치유적·교육적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도시의 병, ‘자연 결핍 장애’를 치유하는 녹색 처방전
현대 도시인들은 알게 모르게 ‘자연 결핍 장애(Nature Deficit Disorder)’를 앓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회색 콘크리트와 스마트폰의 파란 불빛에 둘러싸여 살아가죠. 우리의 뇌는 끊임없는 자극에 지쳐있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는 늘 높습니다.
이때, 도시 속 작은 텃밭은 그 자체로 강력한 ‘녹색 처방전’이 됩니다.
- 뇌를 쉬게 하는 ‘멍때림’의 시간: 초록색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알파파가 증가하며 긴장이 완화됩니다.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단순히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단순 반복적인 행위는 뇌에게 최고의 휴식을 선물합니다.
- 행복 호르몬의 샘, 흙: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흙 속에 사는 특정 미생물(Mycobacterium vaccae)과 접촉하면 우리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는 행위 자체가 항우울제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 반려식물, 돌봄의 치유: 내가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 연약한 존재를 돌보면서, 우리는 책임감과 함께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느낍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외로움을 달래주고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이것이 최근 ‘반려식물’ 열풍이 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농업의 효과를 인정하여, 우울증 환자나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직장인에게 병원 치료 대신 농장 활동을 권하는 ‘치유농업(Care Farming)’이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2. 교실 밖에서 배우는 가장 생생한 교과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텃밭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학교입니다. 마트 진열대의 매끈한 채소만 보아온 아이들에게, 흙투성이 당근과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충격이자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 기다림과 인내의 학교: 스마트폰 화면은 터치 한 번에 즉각 반응하지만, 씨앗은 싹을 틔우기까지 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농사를 통해 세상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음을,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오는 수확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온몸으로 배웁니다.
- 생명의 순환을 배우는 과학실: 작은 씨앗이 싹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순환 원리를 이해합니다. 시든 잎과 음식물 쓰레기가 퇴비가 되어 다시 식물의 거름이 되는 것을 보며 ‘쓰레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됩니다.
- 식습관을 바꾸는 마법: 편식하던 아이도 자기가 직접 키운 방울토마토와 상추는 맛있게 먹습니다. 땀 흘려 키운 농산물의 소중함을 알기에,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식습관이 건강하게 변화합니다.
텃밭은 아이들의 정서 지능(EQ)과 생태 감수성을 키워주는, 콘크리트 교실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입니다.

3. 단절된 이웃을 잇는 ‘도시의 사랑방’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단절된 도시에서, 텃밭은 주민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강력한 매개체가 됩니다.
- 경계가 허물어지는 공간: 텃밭에서는 나이도, 직업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추 농사가 잘됐네요”, “이 벌레는 어떻게 잡나요?” 같은 사소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흙을 만지는 동안 사람들은 사회적 가면을 벗고 훨씬 진솔해집니다.
- 세대 공감의 장: 텃밭은 노년층의 지혜와 청년층의 열정이 만나는 곳입니다. 농사 경험이 풍부한 어르신은 마을의 ‘농사 선생님’이 되어 자존감을 회복하고, 젊은 세대는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 나눔의 문화: 수확이 많은 날, 상추 한 봉지를 이웃에게 건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텃밭에서 시작된 작은 나눔은 삭막했던 아파트 단지를 ‘사람 냄새나는 마을’로 변화시킵니다.
농사는 사람을 기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도시농업의 생산성, 경제성, 기술적 측면에 집중해왔습니다. 하지만 도시농업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는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행위를 넘어 ‘사람을 기르고, 마음을 치유하며,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회색 빌딩 숲 사이, 작게나마 마련된 초록색 텃밭은 도시가 숨 쉴 수 있는 ‘허파’이자, 도시민들의 지친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식처’입니다. 우리가 도시에서 흙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13회에 걸쳐 도시농업의 과거와 현재, 기술과 가치에 대해 폭넓게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대한민국으로 돌려볼 차례입니다.
다음 14회에서는 ‘대한민국 도시농업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에 대해 냉철하게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제언을 해보려 합니다. 우리의 법과 제도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 어떤 걸림돌이 있는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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