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흙과 기술을 잇는 스토리텔러 호미농부입니다.
지난 유럽 편에서는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유럽 도시농업의 다채로운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우리에게 가까운 곳, 역동적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아시아 대륙으로 향합니다.
아시아의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만큼 인구 밀도도 높습니다. 경작할 땅은 턱없이 부족하고, 급변하는 기후와 불안정한 국제 정세는 식량 수급에 지속적인 위협을 가합니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 속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농업을 단순한 1차 산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국가적 비전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도시를 ‘미래 식량 안보의 전진 기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흙을 넘어 빛과 물, 그리고 데이터를 다루는 아시아 도시농업의 혁신적인 현장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6회. 아시아편: 고밀도 도시의 생존 전략, 첨단 기술을 품다 (심화편)
인구는 폭발하고 땅은 부족한 아시아의 거대 도시들에게, 식량 자급은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생존 전략입니다. 특히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전 세계적인 물류망의 마비나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파동은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환경적 절박함은 아시아 국가들이 농업에 기술을 접목한 ‘애그리테크(Agri-Tech)’, 그중에서도 도시농업 기술의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입니다.
1. 싱가포르: ‘불가능’에 도전하는 식량 안보의 요새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도시 국가 중 하나입니다. 국토 면적이 서울보다 조금 크고, 신선 식품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말라카 해협이라는 세계적인 물류 동맥을 쥐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해상 운송로가 막히면 당장 먹을 것이 없어지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이러한 위기감에, 싱가포르 정부는 2019년 ’30 by 30’이라는 파격적인 국가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2030년까지 국가에 필요한 식품의 30%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언뜻 보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습니다.

땅이 없는 싱가포르의 유일한 해답은 건물을 올리듯 농장을 위로 쌓아 올리는 것, 즉 ‘수직농장(Vertical Farm)’이었습니다. 싱가포르 식품청(SFA)은 ’30×30 익스프레스’ 같은 보조금 제도를 통해 첨단 농업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에 부지와 R&D 비용을 파격적으로 지원합니다.
그 결과, 9미터 높이의 타워를 회전시켜 작물을 키우는 ‘스카이 그린스(Sky Greens)’ 같은 1세대 수직농장을 넘어, 더욱 진보한 실내 수직농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서스테니어 농업(Sustenir Agriculture)’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실내에서 LED 빛의 파장과 영양액을 정밀 제어하여, 열대 기후인 싱가포르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했던 케일, 시금치, 딸기 같은 고부가가치 냉대성 작물을 연중 생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100% 싱가포르산’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높은 가격에 팔려나갑니다. 물론, 실내 농장의 막대한 전기 사용량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개발과 태양광 에너지 연계 등 R&D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도시농업은 돈을 버는 산업을 넘어,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방패 산업인 셈입니다.
2. 일본: ‘안전·안심’을 향한 열망이 낳은 혁신, 식물공장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사회에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는 식품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을 ‘가격’이나 ‘맛’이 아닌, ‘안전·안심(安全・安心)’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토양과 외부 환경에 대한 깊은 불신이, 역설적으로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식물공장(植物工場)’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식물공장은 ‘농장’이라기보다는 ‘정밀기기 공장’에 가깝습니다. 작업자들은 방진복을 입고 에어샤워를 거쳐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다층 선반 위에서는 식물의 종류와 성장 단계에 맞춰 최적화된 파장의 LED 빛이 24시간 내리쬐고, 인공지능이 영양액의 농도와 이산화탄소 수치를 실시간으로 제어합니다. 이러한 완전 통제 환경 덕분에 물 사용량은 노지 재배의 1%에 불과하며, 농약을 전혀 쓰지 않아 씻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을 만큼 깨끗한 채소를 1년에 20번까지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교토의 ‘스프레드(Spread)’사는 파종부터 수확, 포장까지 전 과정을 로봇이 담당하는 완전 자동화 공장을 구축하여, 인건비를 절감하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무인 로봇 농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파나소닉, 후지쯔 같은 전자 대기업들도 자신들의 반도체 공장 기술과 LED 기술을 식물공장에 접목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재난의 상처를 딛고 ‘절대적인 안전’을 향한 사회적 열망이, 일본을 세계 최고의 식물공장 기술 강국으로 만든 것입니다.
3. 대한민국: IT 강국의 스마트팜, 도시와 농업을 잇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아시아의 치열한 애그리테크 경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플레이어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과 제조업 기반은 우리의 강력한 무기이며, 정부와 민간 모두 스마트팜 기술 개발에 적극적입니다.

정부는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전국에 조성하며 스마트팜 기술의 연구개발, 교육, 실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들의 활약 또한 눈부십니다. 서울 지하철 상도역이나 답십리역에는 역사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만든 ‘메트로팜’이 설치되어, 시민들이 오가며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고 갓 수확한 신선한 샐러드를 맛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도시민들에게 농업을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접점이 됩니다.
또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 모든 재배 시설을 모듈화하여, 원하는 곳 어디든 설치하고 이동할 수 있는 ‘컨테이너팜’ 기술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 이동형 스마트팜은 물이 부족한 중동의 사막 지역은 물론, 극지방의 연구 기지나 재난 지역에도 신선한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KT, SKT 등 통신사들도 자신들의 통신망과 빅데이터 기술을 스마트팜에 접목하여 정밀 농업 솔루션을 제공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4. 중국: 거대한 시장이 만드는 스케일의 혁신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국은 도시농업에 있어서도 그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급속한 도시화와 중산층의 증가로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중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은 대규모의 스마트팜과 첨단 식물공장 건설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베이징 외곽이나 상하이 인근에는 축구장 수십 개를 합친 것과 같은 규모의 거대 스마트팜 단지가 조성되어, 수십 미터 높이의 수직농장에서 대량의 채소와 과일이 생산됩니다. 이들은 인공지능 기반의 환경 제어 시스템과 로봇 자동화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자국 내에서 스마트팜 기술과 장비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며, 이를 통해 생산 비용을 낮추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도시농업은 첨단 기술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텃밭을 가꾸는 커뮤니티 가든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잃어가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가치를 도시에서 다시 찾아내려는 노력인 셈입니다. 거대한 스케일의 첨단 농업과 뿌리 깊은 공동체 농업이 동시에 발전하는 모습은 중국 도시농업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아시아의 도시농업은 이처럼 국가적 생존 전략과 첨단 기술, 그리고 안전에 대한 열망이 결합되어, 농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도시는 식량을 소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미래의 첨단 농업 기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드디어 기술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도시의 심장부에서 미래를 경작하는 ‘수직농장’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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