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텃밭의 흙을 한 줌 쥐어보면, 그 촉촉함만으로도 내일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흙이 머금은 수분은 생명의 시작이자, 농부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동해안 강릉의 땅은 바싹 타들어가고, 시민들은 식수까지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는 소식에 농부의 마음 또한 타들어 갑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지역의 가뭄 문제가 아니라, 기후 변화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연의 엄중한 질문입니다.
왜 강릉은 목마른가? 하늘만 탓할 수 없는 이유
먼저 우리는 현상을 정확히 진단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비가 오지 않아서’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형적 특성과 기후 변화의 복합적인 요인이 숨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비구름을 가로막는 거대한 병풍과도 같습니다. 수분을 머금은 구름은 산맥을 넘기 전 서쪽 사면(영서 지방)에 대부분의 비를 뿌립니다. 그리고 산맥을 넘어온 공기는 고온 건조한 바람(푄 현상)이 되어 동쪽 사면, 즉 강릉을 포함한 영동 지방을 덮칩니다. 예로부터 영동 지방이 가뭄에 취약했던 이유입니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이러한 현상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겨울철 폭설이 내려 산간 지역에 거대한 ‘물의 창고’ 역할을 해주었지만, 최근에는 눈 구경마저 힘들어졌습니다. 봄철 가뭄을 해갈해주던 자연의 저수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강수 패턴 역시 예측 불가능하게 변하며, 한번 비가 안 오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으로 가뭄이 장기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농부의 시선: 땅이 물을 담지 못하고 있다
저는 이 문제의 해법을 하늘이 아닌, 바로 우리가 딛고 선 ‘땅’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농업 방식과 도시 개발은 땅 스스로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왔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빗물을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보냅니다. 비효율적인 물 사용이 만연한 농경지는 어떻습니까? 경운기로 깊게 갈아엎어 미생물 생태계가 파괴된 맨땅은 마치 사막과 같습니다. 비가 내려도 표면만 적실 뿐,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그대로 증발하거나 흙과 함께 유실되어 버립니다. 땅이 거대한 스펀지가 아닌, 물을 튕겨내는 방수포처럼 변해버린 것입니다.
결국, 하늘이 내려주는 귀한 생명수를 담아둘 그릇을 우리 스스로 깨뜨려 온 셈입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호미농부의 제안
강릉의 위기는 우리 모두의 위기입니다. 지금 당장의 식수 공급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환경을 살리고 농업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합니다.
1. ‘물을 품는 농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무경운 저탄소 농법의 확대: 밭을 갈지 않고 작물의 잔해물이나 녹비작물로 땅을 덮어주는(피복) 농법을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토양은 수많은 미생물과 유기물 덕분에 스펀지처럼 푹신해져 빗물을 최대한 깊숙이 저장합니다. 이는 가뭄에 대한 최고의 보험입니다.
- 스마트 정밀농업의 도입: 이제는 ‘언제나, 충분히’가 아닌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물을 주는 시대로 가야 합니다. 토양 수분 센서, 드론을 활용한 작물 상태 분석, 점적 관수 시스템 등 스마트 기술을 통해 물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이는 물 부족 해결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과 탄소 저감에도 기여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2. ‘도시가 스스로 물을 관리’하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 빗물 저금통의 의무화: 공공건물은 물론 신축 건물에 빗물 저장 및 이용 시설 설치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모아진 빗물은 조경용수, 청소용수, 화장실 용수 등 허드렛물로 사용함으로써 상수도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 투수성 포장의 확대: 도시의 아스팔트를 빗물이 스며드는 투수성 블록으로 교체하고, 도심 곳곳에 작은 생태 공원과 습지를 조성해야 합니다. 도시는 더 이상 물을 배척하는 공간이 아니라, 물과 함께 숨 쉬는 생태 공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는 지하수 함양과 열섬 현상 완화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강릉의 메마른 땅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하늘만 바라보며 일희일비할 것이냐고, 언제까지 자연이 주는 경고를 외면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해법은 이미 우리 발밑에 있습니다. 흙을 살리고, 물의 순리를 존중하며, 기술의 지혜를 더하는 것. 한 명의 농부가 밭에서 실천하는 작은 노력이, 도시의 정책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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